나의 이웃이 되어 줄래요?_포엠포엠 2022. 가을
<2022년 가을 글로벌 포엠포엠>
나의 이웃이 되어 줄래요?
정혜선
우리 동네에는 수영장과 테니스코트를 함께 운영하는 클럽이 여러 개 있다. 멤버십제도로 운영되는 이러한 소위 컨트리클럽은 지역 커뮤니티를 중요시한다는 이유로 시설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이내의 정해진 지역에 거주해야만 멤버십을 구매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지역은 메릴랜드의 여느 지역보다 집값이 곱절은 더 나가는 집들이니 감히 발언컨대 부자동네 사람들만의 폐쇄적인 클럽문화 냄새가 풍긴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비거주민에게도 제한적으로 클럽이용권 ‘구매권한’을 판매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황송한 권한을 가지면 수월하게 이용권을 살 수 있느냐. 그도 쉽지 않을 것이 안 그래도 비싼 이용권에 더하여 두 배 이상의 거금을 가입비로 얹어 줘야하고, 허울 좋은 ‘기부’도 1000달러 정도는 해야 한다. 여름 한 시절 수영장 좀 즐기자고 400만원 남짓 큰돈을 쉽게 쓸 수 있는 가계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 결국 클럽은 본래의 취지대로 ‘지역민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미국은 주(州)마다 법이 다르고 삶의 특징도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접지역인 워싱턴 DC, 버지니아, 메릴랜드 이 세 지역만 놓고 보아도 행정법, 생활에 관계되는 법들이 차이가 난다. 필자 개인에게 피부로 와 닿았던 대표적 차이점은 메릴랜드 주에서는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없다는 점, 알코올만 판매하는 주류상회가 따로 있는데 그곳에서도 일요일 오전에는 술을 팔지 못한다는 점. DC에서는 만 3세부터 공공교육이 무조건 무료인데 반해 메릴랜드에서는 저소득층에만 무료이며 대부분의 유아원이 아주 비싼 사립이라는 사실. 3세 유아의 1년 학비가 1500만원 안팎이니 예전에 메릴랜드 살던 친구 한 명이 조카를 DC에 있는 Pre-K3(3세반 유아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 비슷한 걸 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에도 그런 일이 있나하고 의아해했던 일이 떠올랐다.
메릴랜드는 보주적인 주일까? 현재는 보수정치가 우세하지만 오랫동안 민주당색이 뚜렷한 블루스테이트였다. 여담이지만 2015년부터 현재 7년째 주지사를 맡고 있는 공화당 소속 래리 호건(Larry Hogan)주지사의 부인은 한국여성 유미 호건(김유미)이다. 2020년 초 한국은 대대적인 코로나검사로 코로나감염을 선제압하고 있었고 미국은 걷잡을 수 없는 감염확산과 검사키트 부족으로 허우적대고 있을 때 한국에서 50만 회 분량 검사키트를 직통 공수해 온 조력자로서 알려졌다. 다시 수영장 얘기로 돌아오려 한다. 지역 컨트리클럽의 높은 벽의 기저에 깔린 문화는 무엇일까?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서 오는 걸까. 빈부의 격차를 신분의 격차로 굳히려드는 옹졸한 제도를 버젓이 유지하게 두는 사회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싼 연회비를 감당할 재간도 없었거니와 부자들의 끼리끼리클럽에 도무지 적응을 못할 것 같아 나는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공영수영장에 연회원으로 등록했다. (DC는 공영수영장이 무료인데 반해 메릴랜드는 돈을 내야하니 이것도 차이점이다.) 다양한 길이의 수영레인에 워터파크 버금가는 시설을 정비한 카운티의 실내외 수영장을 둘러보고 나는 또 궁금해졌다. 이런 멋진 수영장을 두고 왜 자기만의 동네 수영장을 고집하는 걸까?
여름 내내 카운티의 수영장들을 돌며 물에 젖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는 베데스다는 각국 대사관 직원, DC로 해외근무 온 언론인, IMF 및 월드뱅크 등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 베데스다수영장 가는 길목에는 Affordable Housing, 즉 정부가 저렴하게 공급하는 주택지구가 있어 이민자가족이 특히 많다. 그러니 베데스다실외수영장에 가면 미국이 단연 그러한 나라이므로 온 세계의 사람과 언어가 왁자하게 흘러넘친다. 이민사회의 다문화가 뚜렷이 드러나는 요즘의 미국을 보며 ‘샐러드 볼’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뜨거운 태양 아래 피부색이 모두 다른 너와 내가 섞여 차가운 물을 튀기며 웃고 있노라면 ‘용광로’ 속처럼 섞여버려도 그저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면 컨트리클럽의 간판을 지날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이 TV프로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에서 Fred Rogers가 어느 더운 여름날 지나던 흑인경찰관 클레먼스에게 와서 같이 찬물에 발 담그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다. 수건이 없다며 사양하는 클레먼스에게 자신의 수건을 나눠쓰자고 하자 클레먼스는 승낙하여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앉아 작은 대야에 같이 발을 담갔고, 수건을 나눠썼다. ‘보여줌’으로서 그의 메시지는 확실했고 힘이 있었다.*
*1969년 5월 9일 방영.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인권을 부르짖는 ‘I have a dream.’ 연설을 할 즈음까지 흑인은 백인들이 가는 식당에서 밥 먹을 수 없었고, 버스의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학교 및 공공시설에서 항상 분리되어야했다. 그 후 개정법에 의해 흑인분리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수영장을 둘러싼 시민 의식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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