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6일 화요일

한글을 왜 배워야 해요?

 


한글을 왜 배워야 해요?

나랏 말미 귁에 달아 문와로 서르 디 아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제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어린 백성들을 위하여 누구라도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한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어를 말살당할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지만, 조상들의 희생과 지혜로 지켜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한글. 초·중·종성의 조합으로 무궁무진한 소리를 표기해낼 수 있기에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미래 언어라고도 평가받는 자랑스러운 한글이거늘 미국학교에 다니며 영어만 편애하는 내 아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어찌 이리도 어려운지….

나는 어머니에게 한글을 배웠다. 늦가을 혹은 겨울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글자라도 가르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낮에는 농사일,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과 식구들 식사 챙기는 일까지 모든 것을 해내느라 고단하셨을 어머니가 칸이 넓은 공책 한 권을 앞에 놓고 나에게 기역니은을 가르치셨다. 한글 자모를 다 외운 다음 써보고 싶은 말을 하나씩 글자로 적어보던 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 ‘아버지’에 이어 ‘가방’ ‘나비’ 등의 말을 스스로 먼저 써보고 어머니랑 같이 써보고 하는 식인데 발음을 처음 글자로 직조해 낼 때 실제로 뇌 속에서 제각각으로 존재하던 자음과 모음이 어떤 논리를 가진 회로를 통해 조합, 재배열되는 감각을 경험했다. 짜릿했다. 어설프게나마 처음으로 느낀 배움의 희열이었던 것 같고, 속된 말로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 신선했다. 흥분에 겨워진 내가 어머니에게 “엄마, 엄마, ‘둑실이’ 써보자.” 했다. ‘둑실이’는 우리 집 개 이름이었다. 글을 깨쳐가는 자식을 보며 자신의 교수법에 뿌듯해하고 계셨을 어머니의 표정이 금세 난감해졌다. 그러고는 대신 ‘바둑이’를 써보자, 하셨다. 나는 ‘둑실이’를 쓰고 싶다고 졸랐지만 어머니는 끝내 내게 ‘바둑이’를 쓰게 하셨고 조금 전까지 들떠있던 나는 지루한 공부 시간에 붙잡힌 아이로 변해 시무룩이 ‘바둑이’를 따라 적었다.

왜 그때 어머니는 ‘둑실이’를 적어주지 않으셨을까 종종 생각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셨던 어머니가 ‘교육’이라는 엄중하고도 고정된 틀에 갇힌 나머지 부르는 말, 즉 입말에 속하는 ‘둑실이’를 병기할 지적 능력(혹은 용기)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머리가 조금 굵어진 뒤 나는 멋대로 해석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던지! 우리 집에서 개를 가장 사랑하고 보살피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둑실아’ 부르며 쓰다듬고 입 맞추고 밥그릇에 밥을 부어 주셨다. 모든 식구가 그랬지만 ‘둑실’이라고 부를 때의 발음은 ‘둑’이 ‘툭’과 ‘듁’의 중간 소리에 가까운 울림을 내고 ‘실’은 영어의 /sh/에 가까운 연한 바람소리를 내며 아, 혹은 이, 가 따라 나오는 식이었다. 즉 ‘튝-sheer이’ 정도로 쓰면 그 느낌이 전해질까. 철썩대는 개의 혓바닥이 잦은 파도처럼 드나드는 소리가 ‘튝’과 ‘sheer’의 사이에 있어 둑실아, 부를 때 마다 넘실거리며 달려오던 개의 얼굴과 몸, 그 온몸의 느낌을 혀의 정서로 완벽하게 구사해 내시는 어머니에게 ‘둑’과 ‘실’이라는 단순한 글자로 자신이 아는 그 개의 이름을 쓴다는 것은 도저히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리라.

그때 ‘둑실이’를 쓰지는 못했지만, 언어에 대한 흥미가 싹둑 잘린 것은 아니어서 우여곡절 나는 여태까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벵골어까지 배우며 살았다. 외국어를 배울 때마다 가장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언어마다 독특한 고유의 발음을 익히는 것이다. 쉬운 예로 /r/을 /알/이라고 발음하면 안 되고 혀를 말아 올리며 /r/이라고 해야만 진짜 ‘r’이 된다는 것. 발음이 가깝다고 여겨지는 일본어에도 ‘일본어식으로’ 발음해야만 일본어로 인식되는 말이 있다. 벵골어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흉내 낸 발음과 억양으로, 불어는 프랑스식으로, 타갈로그어는 필리핀 사람처럼 말해야만 그 나라 말이 된다. 또한 우리가 한글에 대해 가지는 자긍심은 당연하고 타당한 것이지만, 타 언어권에서도 자기 나라 언어와 문자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인식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훌륭한 한글은 자랑스러워하되 우물 안에 갇혀 내 것만 최고라고 외치는 우愚는 최소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번역이든 통역이든 AI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세상이다. 같은 값의 언어를 무수한 다른 언어로 출력해 내는 기술은 다방면으로 유익하다. 다만 미래 세대들이 이런 기술을 이유로 외국어 습득을 등한시하게 될까 봐 걱정되고 아쉽다. 언어는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다. 언어 공부가 시 쓰기 방법인 ‘되어보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하면 도움이 될까. 대상 속에 나를 넣어 봄으로써 대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 타인의 언어 속에 자신을 포개어 보는 경험이야말로 평화적으로 인류를 발전시켜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한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을 진데 하물며 말이 전혀 다른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이런 연습이 있어야만 미래에 외계인을 만났을 때 능히 소통할 수 있다고, 이렇게 아들을 다시 구슬려 봐야겠다.

포엠포엠 2023년 가을호 발표



2024년 1월 30일 화요일

무덤자리는 고스란히 옥수수 밭으로 바뀌어

 




무덤자리는 고스란히 옥수수 밭으로 바뀌어

부제: 이현애, 지명희, 한성미

 

친애하는 당신, 안녕하세요? 이현애, 지명희, 한성미 님.

미국에 와서야 처음 만나본 내 북녘 동포입니다. 안녕이란 말로 당신에게 인사를 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난 당신이 정말로 안녕했으면 합니다.

 

워싱턴 D.C. 국회 캐피털 힐의 회의장에서 당신들은 북한의 여성에 대해, 그리고 인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목숨 걸고 떠나온 길이었기에 탈북에 실패할 때마다, 혹은 어떠한 이유로든―타당성은 차치하고― 보위사령부에 체포되고 재산을 압수당할 때마다 어김없이 처박혀야 했던 감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고문과 매질의 나날을 힘겹게 언어로 옮겨낸 용기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무릎 꿇거나 기마자세로 꼼짝 못하게 벌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시에는 모욕적인 욕설을 들으며 매를 맞았지요. 화장실 없는 감옥소 안에서 방 마다 고무 통 하나에 대소변을 해결하고, 가득 찰 때까지 변기를 비우지 못하게 하는 저질의 괴롭힘이 만연한 곳. 어느 날은 소변만 허락한다며 대변 보는 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일까지 있었지요. 현실을 노골적으로 증언하자면 토악질나는 언어들을 발음해야 하는데, 스스로 제 입을 더럽히는 치욕을 다시 한번 무릅쓰고 미국 D.C.의 청중을 향해 당신들은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삶이지만 아직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구하지 않으면 압사당하고 침몰해버릴 무고한 북한의 보통사람들을 제발 도와 달라고. 우연히 들어온 듯한 국회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 되어 눈물 흘렸습니다.

 

북한에선 인권이란 말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겐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한 권리가 있다는 진실이 북한 내에서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당당하게 개인이 사회 구성원들과 조화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가 오직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만 악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소중하다’ vs ‘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고난도 슬픔도 행복이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 된 후 교화소로 끌려간 당신은 나체로 온몸 수색을 받았습니다. 숨긴 돈이 있는지 찾기 위해 위생장갑도 끼지 않은 손가락이 질 속까지 뒤졌습니다. 재판도 없이 예고없이 처형되기 일쑤인 그곳에서 ―뇌물이 없었다면 살아 남지 못했을― 그녀가 3년형을 살고 풀려나온 날, 근처 역사에 걸린 큰 팻말에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고난도 슬픔도 행복이다적힌 글을 보고 극심한 구역질과 분노에 몸서리친 그때를 당신은 고백했지요. 교화소에서 나오는 너무 많은 시체는 처치곤란으로 한꺼번에 구덩이에 묻히는 데, 그 무덤자리는 고스란히 옥수수 밭으로 바뀌어 매년 알이 꽉 찬 옥수수를 키워낸다는 말을 덧붙이는 당신의 눈동자가 추수 끝난 벌판처럼 공허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말아요, 우리! 분단된 세월이 길다고는 하나 우리는 한 민족이며 통일되어 함께 살아야 할 한 가족입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조국을 멀리 두고 살다 보면 어디서 한국말만 들려도 내 피붙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한반도 안에서 일어나는 기쁜 일에는 뿌듯함이 풍선처럼 부풀고, 끔찍한 사건사고 소식엔 마치 내 친지에게 일이 생긴 것 같이 발을 동동 구릅니다. 닿을 수 없기에 더욱 그립고 안타까운 내 가족들의 이야기, 이것이 북한 동포들을 향한 저의 마음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신 당신, 감사합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마을에서 오늘도 위태로운 외줄에 선 우리 동포들의 손을 잡아 주도록, 세계의 눈이 한번 더 그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당신의 목소리에 메아리를 보탭니다.

 

당신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며,

정혜선 드림

 

2024년 1월 17일 수요일

초록 엄지(Green Thumb)

 

초록 엄지(Green Thumb)

-식물을 잘 키우는 타고난 재능

 

집이 갖고 싶다고 꿈 꿨던 적은 없다. 사회초년생 시절 대학선배랑 들렀던 인사동사주카페의 어둑한 조명 아래서 한자와 한글을 휘갈겨 쓰며 점쟁이가 말했다. 팔자에 집이 있어, 다만 투기는 하면 안 돼. 중학교 때 젊고 열정적인 사회선생님께도 배웠다. 내집마련을 인생목표마냥 악착같이 돈 모으기에만 급급하여 삶을 즐기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한국인들뿐이라고. 하지만 그리 뽐내며 말하기에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불안정한 부동산 시세와 팬데믹 탓에 집이란 얼마나 하늘같은 존재가 되었나.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영혼이라도 끌어 모아 집을 샀어야하는 후회로 땅을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손 쓸 재간 없는 현실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에겐 언제나 더 큰 꿈이 있었다는 것!

나는 땅이 갖고 싶었다. 너무 크지는 않게. 도시보다는 시골에.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릴 땅, 삽으로 이랑을 내고 거름을 주고 빛을 뿌려 그늘을 드리울 땅 품기를 언제나 소원했다. 나는 땅이 좋고 흙이 좋다. 잘 빗질된 흙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꽉 차오르며 심장이 메아리친다. 발가벗은 갓난아기를 품어 젖이 돌 듯 내 손길을 기다리는 흙을 매만지고 싶어진다. 간혹 공사장을 지날 때 편편히 다져놓은 붉은 흙을 보기만 해도 몰래 들어가 양파 모종 한 줄이라도 심어놓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촌스러움은 쉬이 벗겨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국 외교관과 결혼을 했더니 미국이 아닌 타국에 살 땐 정부에서 집을 준다. 그러니 그 옛날 점쟁이 말 대로 살 집 걱정은 없다. 다만 내 집이 아니고 정원사들이 주변을 관리하니 내 땅돌보는 재미는 덜하다. 미국 본부에 돌아와서야 돈 들여 살 집을 구하는데 첫 아이가 태어난 워싱턴디시의 타운하우스가 8년 전 첫 미국살림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월세를 내고 살았던 DC의 신혼집은 집주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잉글리쉬베이스먼트인데 우리식 반지하에 가까운 구조의 집이었다. 방 한 칸에 거실 겸 부엌 한 칸이 전부였고 낮에도 전등을 켜야 활동이 원만했다. 좁고 어두운 도시의 방 한 칸이었지만, 집주인이 뭐든지 마음대로 심고 가꿔도 된다고 허락한 손바닥만한 화단 한 칸이 있어 나는 풍성한 도시의 추억을 수확했다. 이사한 이듬해 집 앞 정원은 깻잎, 고추밭으로, 좁은 뒤뜰은 허브가든으로 변신했다.

아들 둘로 식구를 불려 미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도시를 벗어나 정원이 있는 교외로 이사했다. 베데스다의 우드헤이븐이란 곳인데 동화 속 소녀가 금방이라도 앙증맞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날 것 같은 고풍스런 저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그 중 우리는 소박하고 실용적인 집을 골랐다. 등변사다리꼴의 부지에 얌전히 앉은 콜로니얼양식의 벽돌집이다. 집 뒤로 울창한 숲이 있어 뒤뜰에 앉아 있으면 삼림욕 부럽지 않은 숲 향이 전해온다. 그리고 집을 사기 전부터 내 눈에 쏙 들어온 미래의 내 텃밭. 집을 보러왔는데 뒤뜰 문으로 이어지는 담벼락 아래에 잔디와 마른 흙이 엉긴 빈 땅 한 줌이 오후의 햇볕아래 오수를 즐기듯 무방비로 누워있는 게 아닌가. 내 눈에만 보이는 보석을 발견한 기쁨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메릴랜드에서 집과 함께 사계절을 샀다. 여름엔 잡초보다 잘 자라는 잔디를 제때에 깎아주느라 매 주말 부지런을 떨었고, 늦가을 들어선 낙엽 지는 정원을 갈퀴로 쓸어내느라 매일 오후가 바빴다. 과연 힘에 부치는 노동이라 아들 둘 고사리 손까지 보태 낙엽정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텃밭은 오롯이 나의 놀이터다. 쟁기를 빌려서 이랑을 만들었고 한파에도 잘 견디는 민트와 로즈마리를 먼저 심어두었다. 날이 완전히 풀리자 분갈이용 화분을 종류별로 늘어놓고 빈 이랑을 살피며 그저 흐뭇해하는 중이다. 맨 앞줄에는 부추와 쪽파를 심고, 고추와 깻잎은 널찍한 곳으로 심고, 타임, 오레가노, 방아풀도 잊지 않고 심어두어야지. 바질 씨앗을 종류별로 사 놓고 태국바질이 듬뿍 들어간 더운 국수를 후루룩거릴 생각에 벌써 군침을 삼킨다. 마흔 살이 되었고 가꿀 땅을 손에 넣어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

 

늦게 한 결혼도 아니었는데 아직도 내 손 거치지 않고는 잠들러가지 않으려는 아들이 있다는 게 신비롭다. 삶의 이랑을 일구느라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가꾸고 키우는 일은 이제야 시작이라니. 올바로 키워내기란 또 오죽 힘든 일인가. 수확을 바라지 않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 자식농사란 말을 들은 것도 같다. 호미 하나로 드넓은 들판을 마주한 팥죽할머니라면 이리 애태우지는 않으시겠지. 겨울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의 고랑은 꼭 매야했기에 더운 여름 할머니는 꿋꿋이 호미질을 하셨다. 나는 팥죽할머니가 되기로 하자. 삶이란 호미가 지나는 흙이란 생각이 든다. 호미질에 걸리는 돌이며 잡풀의 뿌리란 생각이 든다.

 

 

 

*이현승 시인 시 <자각 증상>에서_ 대답이고 부탁인 말,

 

 글로벌포엠포엠 메릴랜드이야기

2022년 여름호

정혜선

 

“동포들과 함께 하는”

 동포들과 함께 하는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동포들과 함께 하는 열린 낭송의 밤을 얼마 전 마쳤다. 10월 가을 햇살이 주홍빛 단풍잎에 살포시 부비우며 서늘하고도 코끝 알싸한 바람 부는 날이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한 낭송의 밤을 함께 하기 위해 버지니아의 한 성당 야외 채플에 모여 앉은 동포들은 휴대용 방석, 담요, 주최 측에서 마련한 따뜻한 차로 추위를 달래면서 고요히 문학의 밤에 스며들었다.

 

한인행사에 귀빈 초대가 빠질 수 없다. 한국총영사, 전 주한 미국대사, 대학의 저명한 교수를 초대하여 지역 한인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고무하는 자리를 갖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귀빈들에게 단순히 인사말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의 취지에 맞게 초대 손님들도 창작 작품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낭독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시간 관계상 한국총영사는 인사말을 문학작품처럼 멋지게 하셨고, 한국어를 유창히 하는 전 주한 미국대사는 노산 이은상 시인의 시조를 한국어와 영어로, 그리고 미국에서 시조를 쓰고 연구하는 시인 데이비드 메켄(David McCann)의 시조를 영어로 낭독했다. 초대 손님이 어떤 작품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평소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자세를 엿볼 수 있어 이번 미국대사의 한국 시조 낭독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본 순서로 워싱턴 문인회 회원들의 시, 시조, 수필, 영시 등 다양한 장르를 감상했고, 반갑게도 본지 포엠포엠에서 출간을 하신 권순자 시인님의 천 개의 눈물도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장의 낭독으로 버지니아의 저녁 공기 속으로 울려 퍼졌다. 워싱턴DC에 살며 워싱턴 문인회라는 울타리에 들어가 이곳의 문우들을 만나지만 뜻밖에 들려온 권순자 시인의 이름은 고향 친구 소식을 들은 듯 정겹고 또한 자랑스러웠다.

 

낭송의 밤을 찾아온 동포들은 대부분 윤동주문학회, 재미한국학교,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미국사회 내에서 한국문화와 정신을 강조하고 현지인 및 차세대에게 전파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민자라는 아웃사이더에 머물지 않고 토착화 과정을 꾸준히 밟은 후 본래 갖고 있던 본국의 문화와 색을 더욱 뚜렷이 굳히고 알리는 사람들. 동포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 그들은 국가의 힘을 갖기도 하고, 민족을 대표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재미동포로서 활기차게 미국 사회를 살아하는 아주 보통의 한인이기도 하다. 한국어라는 모국어가 있어 타향살이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아는가. 큰 건물 속 로비에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웅성거려도 누구 한 사람 한국말을 하고 있다면 표적으로 일부러 쏘는 듯이 내 귀에 와 박힌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내 동포를 단박에 알아본다.

동포와 함께 하는 열린 낭송의 밤’, 동포란 글자가 새삼 뭉클하여 사전을 찾다가 교포와 동포의 차이점을 확인했다. ‘교포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민이란 뜻이고, ‘동포란 사는 곳과 관계없이 같은 민족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한 나라에만 국한 되지 않고 여러 나라를 전전해야 할 내 운명에는 동포란 말이 더 따뜻할 것이다.

 

가을해가 일찍 저물어가며 낭송회장의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담요를 꼭 쥐고 앉은 어린 학생들에게 자꾸 눈이 갔다. 학교에서는 평소 친구들과 영어만 쓰고 사는 아이들이지만 한국인 부모님과 주말 한국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 낭송의 밤 순서에는 한국학교 학생들의 시 낭송도 있었다. 행사 시작보다 일찍 와서 무대에 미리 서 보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떨지 않도록 몇 번이나 소리 내어 낭송 연습을 하던 모습. 쉬어 읽어야 할 곳, 목소리를 점점 높여야 할 곳 등 빽빽하게 메모가 적혀있는 아이들의 원고를 곁눈으로 슬쩍 보고는 대견한 그들을 내 자식인 양 꽉 안아주고 싶었다. 종이가 꾸깃꾸깃해지도록 몇 번이나 쥐고 놓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의 성실한 준비 자세를 보고 감탄하며 그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동포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보았다.

 

 

 2022년 글로벌포엠포엠 겨울호정혜선

 

 

나의 이웃이 되어 줄래요?_포엠포엠 2022. 가을

 <2022년 가을 글로벌 포엠포엠>

 

나의 이웃이 되어 줄래요?

정혜선

 

우리 동네에는 수영장과 테니스코트를 함께 운영하는 클럽이 여러 개 있다. 멤버십제도로 운영되는 이러한 소위 컨트리클럽은 지역 커뮤니티를 중요시한다는 이유로 시설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이내의 정해진 지역에 거주해야만 멤버십을 구매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지역은 메릴랜드의 여느 지역보다 집값이 곱절은 더 나가는 집들이니 감히 발언컨대 부자동네 사람들만의 폐쇄적인 클럽문화 냄새가 풍긴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비거주민에게도 제한적으로 클럽이용권 구매권한을 판매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황송한 권한을 가지면 수월하게 이용권을 살 수 있느냐. 그도 쉽지 않을 것이 안 그래도 비싼 이용권에 더하여 두 배 이상의 거금을 가입비로 얹어 줘야하고, 허울 좋은 기부1000달러 정도는 해야 한다. 여름 한 시절 수영장 좀 즐기자고 400만원 남짓 큰돈을 쉽게 쓸 수 있는 가계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 결국 클럽은 본래의 취지대로 지역민을 중심으로운영된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고 삶의 특징도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접지역인 워싱턴 DC, 버지니아, 메릴랜드 이 세 지역만 놓고 보아도 행정법, 생활에 관계되는 법들이 차이가 난다. 필자 개인에게 피부로 와 닿았던 대표적 차이점은 메릴랜드 주에서는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없다는 점, 알코올만 판매하는 주류상회가 따로 있는데 그곳에서도 일요일 오전에는 술을 팔지 못한다는 점. DC에서는 만 3세부터 공공교육이 무조건 무료인데 반해 메릴랜드에서는 저소득층에만 무료이며 대부분의 유아원이 아주 비싼 사립이라는 사실. 3세 유아의 1년 학비가 1500만원 안팎이니 예전에 메릴랜드 살던 친구 한 명이 조카를 DC에 있는 Pre-K3(3세반 유아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 비슷한 걸 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에도 그런 일이 있나하고 의아해했던 일이 떠올랐다.

 

메릴랜드는 보주적인 주일까? 현재는 보수정치가 우세하지만 오랫동안 민주당색이 뚜렷한 블루스테이트였다. 여담이지만 2015년부터 현재 7년째 주지사를 맡고 있는 공화당 소속 래리 호건(Larry Hogan)주지사의 부인은 한국여성 유미 호건(김유미)이다. 2020년 초 한국은 대대적인 코로나검사로 코로나감염을 선제압하고 있었고 미국은 걷잡을 수 없는 감염확산과 검사키트 부족으로 허우적대고 있을 때 한국에서 50만 회 분량 검사키트를 직통 공수해 온 조력자로서 알려졌다. 다시 수영장 얘기로 돌아오려 한다. 지역 컨트리클럽의 높은 벽의 기저에 깔린 문화는 무엇일까?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서 오는 걸까. 빈부의 격차를 신분의 격차로 굳히려드는 옹졸한 제도를 버젓이 유지하게 두는 사회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싼 연회비를 감당할 재간도 없었거니와 부자들의 끼리끼리클럽에 도무지 적응을 못할 것 같아 나는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공영수영장에 연회원으로 등록했다. (DC는 공영수영장이 무료인데 반해 메릴랜드는 돈을 내야하니 이것도 차이점이다.) 다양한 길이의 수영레인에 워터파크 버금가는 시설을 정비한 카운티의 실내외 수영장을 둘러보고 나는 또 궁금해졌다. 이런 멋진 수영장을 두고 왜 자기만의 동네 수영장을 고집하는 걸까?

 

여름 내내 카운티의 수영장들을 돌며 물에 젖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는 베데스다는 각국 대사관 직원, DC로 해외근무 온 언론인, IMF 및 월드뱅크 등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 베데스다수영장 가는 길목에는 Affordable Housing, 즉 정부가 저렴하게 공급하는 주택지구가 있어 이민자가족이 특히 많다. 그러니 베데스다실외수영장에 가면 미국이 단연 그러한 나라이므로 온 세계의 사람과 언어가 왁자하게 흘러넘친다. 이민사회의 다문화가 뚜렷이 드러나는 요즘의 미국을 보며 샐러드 볼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뜨거운 태양 아래 피부색이 모두 다른 너와 내가 섞여 차가운 물을 튀기며 웃고 있노라면 용광로속처럼 섞여버려도 그저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면 컨트리클럽의 간판을 지날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이 TV프로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에서 Fred Rogers가 어느 더운 여름날 지나던 흑인경찰관 클레먼스에게 와서 같이 찬물에 발 담그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다. 수건이 없다며 사양하는 클레먼스에게 자신의 수건을 나눠쓰자고 하자 클레먼스는 승낙하여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앉아 작은 대야에 같이 발을 담갔고, 수건을 나눠썼다. ‘보여줌으로서 그의 메시지는 확실했고 힘이 있었다.*

*196959일 방영.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인권을 부르짖는 ‘I have a dream.’ 연설을 할 즈음까지 흑인은 백인들이 가는 식당에서 밥 먹을 수 없었고, 버스의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학교 및 공공시설에서 항상 분리되어야했다. 그 후 개정법에 의해 흑인분리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수영장을 둘러싼 시민 의식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포엠포엠 2015. 여름호/ 제 7회 신인작품공모 당선자/ 정혜선/ 싱코 데 마요 외 4
















 

한글을 왜 배워야 해요?

  한글을 왜 배워야 해요? 나랏 말미 귁에 달아 문와로 서르 디 아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제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어린 백성들을 위하여 누구라도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한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어를 말살당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