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들과 함께 하는”

 동포들과 함께 하는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동포들과 함께 하는 열린 낭송의 밤을 얼마 전 마쳤다. 10월 가을 햇살이 주홍빛 단풍잎에 살포시 부비우며 서늘하고도 코끝 알싸한 바람 부는 날이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한 낭송의 밤을 함께 하기 위해 버지니아의 한 성당 야외 채플에 모여 앉은 동포들은 휴대용 방석, 담요, 주최 측에서 마련한 따뜻한 차로 추위를 달래면서 고요히 문학의 밤에 스며들었다.

 

한인행사에 귀빈 초대가 빠질 수 없다. 한국총영사, 전 주한 미국대사, 대학의 저명한 교수를 초대하여 지역 한인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고무하는 자리를 갖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귀빈들에게 단순히 인사말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의 취지에 맞게 초대 손님들도 창작 작품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낭독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시간 관계상 한국총영사는 인사말을 문학작품처럼 멋지게 하셨고, 한국어를 유창히 하는 전 주한 미국대사는 노산 이은상 시인의 시조를 한국어와 영어로, 그리고 미국에서 시조를 쓰고 연구하는 시인 데이비드 메켄(David McCann)의 시조를 영어로 낭독했다. 초대 손님이 어떤 작품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평소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자세를 엿볼 수 있어 이번 미국대사의 한국 시조 낭독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본 순서로 워싱턴 문인회 회원들의 시, 시조, 수필, 영시 등 다양한 장르를 감상했고, 반갑게도 본지 포엠포엠에서 출간을 하신 권순자 시인님의 천 개의 눈물도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장의 낭독으로 버지니아의 저녁 공기 속으로 울려 퍼졌다. 워싱턴DC에 살며 워싱턴 문인회라는 울타리에 들어가 이곳의 문우들을 만나지만 뜻밖에 들려온 권순자 시인의 이름은 고향 친구 소식을 들은 듯 정겹고 또한 자랑스러웠다.

 

낭송의 밤을 찾아온 동포들은 대부분 윤동주문학회, 재미한국학교,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미국사회 내에서 한국문화와 정신을 강조하고 현지인 및 차세대에게 전파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민자라는 아웃사이더에 머물지 않고 토착화 과정을 꾸준히 밟은 후 본래 갖고 있던 본국의 문화와 색을 더욱 뚜렷이 굳히고 알리는 사람들. 동포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 그들은 국가의 힘을 갖기도 하고, 민족을 대표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재미동포로서 활기차게 미국 사회를 살아하는 아주 보통의 한인이기도 하다. 한국어라는 모국어가 있어 타향살이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아는가. 큰 건물 속 로비에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웅성거려도 누구 한 사람 한국말을 하고 있다면 표적으로 일부러 쏘는 듯이 내 귀에 와 박힌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내 동포를 단박에 알아본다.

동포와 함께 하는 열린 낭송의 밤’, 동포란 글자가 새삼 뭉클하여 사전을 찾다가 교포와 동포의 차이점을 확인했다. ‘교포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민이란 뜻이고, ‘동포란 사는 곳과 관계없이 같은 민족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한 나라에만 국한 되지 않고 여러 나라를 전전해야 할 내 운명에는 동포란 말이 더 따뜻할 것이다.

 

가을해가 일찍 저물어가며 낭송회장의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담요를 꼭 쥐고 앉은 어린 학생들에게 자꾸 눈이 갔다. 학교에서는 평소 친구들과 영어만 쓰고 사는 아이들이지만 한국인 부모님과 주말 한국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 낭송의 밤 순서에는 한국학교 학생들의 시 낭송도 있었다. 행사 시작보다 일찍 와서 무대에 미리 서 보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떨지 않도록 몇 번이나 소리 내어 낭송 연습을 하던 모습. 쉬어 읽어야 할 곳, 목소리를 점점 높여야 할 곳 등 빽빽하게 메모가 적혀있는 아이들의 원고를 곁눈으로 슬쩍 보고는 대견한 그들을 내 자식인 양 꽉 안아주고 싶었다. 종이가 꾸깃꾸깃해지도록 몇 번이나 쥐고 놓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의 성실한 준비 자세를 보고 감탄하며 그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동포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보았다.

 

 

 2022년 글로벌포엠포엠 겨울호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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